내 생각엔...

나는 어떤 아들이고 또 어떤 아버지로 기억될까?

부지런히 살자 2020. 1. 6. 16:44

 

'여보세요.'

어머니 저예요.

'응 그래 잘 있었어?'

어머니는 내가 묻고 싶은 말까지 먼저 하신다.

오늘따라 어머니 목소리는 맑고 또 밝다. 말하자면 아픈 데가 없다는(80이 넘은 노인이라 맨날 아프긴 하겠지만) 뜻이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전 걱정 마세요. 전 아직 젊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자네도 이제 곧 환갑이야 몸조심 해야지.... 늘 청춘이 아니잖아.'

그래도 전 마라톤도 했잖아요. 백리를 네 시간 동안 뛰었지만 전 거뜬해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그래도 늘 건강해야 지~ 아직 막내가 열 살이 잔는가?'

그야 그렇죠 그 녀석이 어리니까 아직 더 일도 해야 하고요.

재작년 암 수술로 직장을 떼 내고 장루를 통해 배변하는 불편한 생활을 하시면서도 환갑의 걱정만 하신다.

사실 나도 겁나긴 한다.

내 나이 오십아홉인데 막내는 겨우 열한 살이고 이 녀석이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면 난 칠십을 훌쩍 넘기고 만다.

그런 걱정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지고 긴 한숨이 뿜어져 나오지만 속 모르는 사람들은 말한다.

'계장님 형과 누나들이 있는데 뭘 걱정하세요?'

그러나 그건 너무도 모르는 소리다.

내가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키웠지만 형제란 결혼하면서부터 거의 남과 다르지 않다. 내 주변의 많은 경우를 봐 왔고 느낀 거지만 부모 죽은 뒤 재산을 남겨두면 싸우지 않은 사람들 없었으니 죽은 뒤 누가 알까마는 자식들 싸우는 꼴 안 보려면 재산을 남기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기업 자식들이야 두말하면 혀 아플 일이지만....!

몇 마디 안부를 주고받다 보면 어머니와의 얘기는 금방 동이 나고 만다.

아무래도 어머니와 떨어져 산지 오래되었으니 동질적인 요소가 줄었고 그로 인해 공유하는 부분이 없고 아들들의 속성이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되도록이면 자주 전화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늘 그렇게 못한다. 시간이 없다거나 바쁘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거나 핑계다.

솔직히 마음이 없어서이다.

그렇다고 어머니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은 늘 어머니 당신께 가까이 있기에 무속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잊을만하면 전화하고 또 찾아뵙는 게 전부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사오정이 맞는가 보다.

아까 했던 말을 또 반복하신다.

'나 잘 있어 걱정 마 나 안 아파!'

'자네가 보내 준 돈으로 잘 먹고 잘 지냉께 걱정 마!'

워낙 활달한 성격이었지만 2년 전 암 수술로 직장을 절단하고 장루를 통해 배변하면서부터 외부 외출을 꺼려 하신다. 하루도 빼먹지 않던 새벽 기도는 물론 주말 예배도 잘 빠진다.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요것이 뜬금없이 소리를 낸당께 그때마다 얼마나 쪽팔린지 몰러~'라며 장루의 가스 배출 소리 때문에 부끄러워 사람 많은데도 못 가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나이는 들었어도 천생 여자는 여잔가 보다.

그때마다 난 말한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방구 안 꾸고 산답니까? 누구나 방구는 다 꾸어요... 그러니까 그런 걸로 창피하다고 하지 마세요.

그러나 방귀는 다르다고 말씀하신다.

'방귀야 사람들 있으면 참았다가 뀔 수도 있지만 이건 제 맘대로 나온다니까'

하긴 나도 그렇다.

엘리베이터에서 방귀 뀌었는데 뒤따라 탄 사람이 방귀 냄새를 맡으며 도끼눈으로 째려볼 것을 생각만 해도 얼굴 뜨겁다.

그러니 아무리 나이가 많은 팔순이 넘은 노인이라 해도 부끄러워하는 생각은 젊은이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어머니가 쓴 카드 내역에 나에게 문자로 통지되니 금액만 봐도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짐작하기 쉽다. 그런데 오늘 사용 내역을 보니 택시비에 진료비가 만 원가량 되는 것으로 보아 일상적인 수준이라는 짐작을 한다.

그래도 세상 좋아졌지 카드 사용 내역이 문자로 통지되는 것을 보고 어느 부모의 건강 상태를 짐작할 수 있으니.... 카드사가 고마울 뿐이다.

 

늘 그렇지만 내가 먼저 묻기도 전에 밥 잘 먹고 잘 지낸다며 보고 하듯 하실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보내 드린 돈으로 생활하시고 또 병원 다니니까 내게 부담 주는 게 미안해서 이러시는 것은 아닐까?

내가 좀 여유 있으면 좋겠는데?

그럼 더 많은 돈을 보내 드릴 텐데.......!

나는 거듭 당부드린다.

춥게 지내지 마시고 병원 갈 때는 내가 드린 카드로 택시 타고 가세요. 그래봤자 기본요금 거리밖에 안되잖아요. 아셨죠?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하고 있어 ... 걱정 마... 자네 바쁜 께 끊어'~~라며.. 벌써 어머니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전화 준 것만으로도 고맙단 뜻인지 내가 일에 지장을 받을까 봐 염려되어서 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어머니는 행복한 톤으로 '끊어'라며 벌써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나 보다.

 

왜 할 말이 없겠는가?

모습만 사람인 핏덩이를 두 다리로 걷고 사람다운 행세하도록 사람으로 만들었으니 어머니의 정성은 내가 아버지가 되었지만 다 헤아리기 어려우니 지금 내가 사람답게 살아 있는 이유는 바로 어머니가 있어서라는 사실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늘 마음뿐이다.

아이들이 생일은 꼬박꼬박 챙기면서도 어머니의 생신은 제대로 챙겨 드리지 못하면서 나이 든 사람이 무슨 생일이냐며 내 생일도 구렁이 담 넘듯 지나친다며 부족한 나 자신을 위로할 뿐 죄스러운 마음마저 잊은 것은 아니다.

 

사람이란 게 참 묘하다

말로 힐 때는 아무렇지도 않더니 글로 쓰려니 눈물이 난다. 아무래도 감정을 목구멍까지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일 것이지만 난 나이 들면서 나의 눈물샘이 마른 줄 알았다.

울어 본 적이 언제였던가?

눈물이 마르니 눈이 더 나빠진 건가?

눈물이 마르면서 눈도 침침해 지거 인공눈물까지 휴대해야 한다.

슬픈 영화를 보아도 글을 읽어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옛 성현의 말씀인 측은지심이 사리진 걸까?

그런데 어머니에 관한 생각을 하며 글을 쓰자니 눈물이 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직 살아 숨 쉬고 있으며 가슴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가 보다.

 

진즉에 어머니 생각의 글을 자주 썼으면 인공 눈물은 필요치 않았을 터인데 왜 진즉 몰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