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시사

[2018년2월22일 만평, 신문사별 만평, 언론사별 만평, 침묵의 카르텔, 암묵의 승인] 모아 보기

부지런히 살자 2018. 2. 22. 09:14

이윤택 감독의 성추행의 사실이 일판 만파로 퍼지면서 그간 우리 사회에 넓게 자리 잡은 침묵의 도덕률 즉 묵시적 승인이라는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침묵의 카르텔이라고도 하는 이러한 문제는 비단 이윤택 감독의 성추행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검찰 내부에서 서 검사에 대한 성추행 문제도 '너만 참으면 되는데 왜 그래?'라는 식으로 공직자에게도 있었으며 특히 
심각한 것은 역시 '우병우'였습니다.
우병우가 문고리 3인방으로 몰랐고 최순실을 몰랐겠습니까?
아마도 그 역시 속 시원히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왜?
다시 이윤택 감독의 성추행 문제로 거슬러 가보자고요.
이 감독이 어린 여배우에게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하고 임신까지 시켰으며 그로 인해 낙태를 하도록 했다는 사실을 극단 내에서 몰랐겠느냐?는 것이죠.
다 알았겠죠.
그쵸?
이윤택이 후배 여배우를 자신의 성노리개로 여긴다는 소문이 어제오늘의 문제였겠습니까?
극단 내에서도 파다했겠죠.
그러나 입을 굳게 다문 거죠.
왜?
이윤택에게 잘못 보였다간 한국이란 좁은 바닥에서 얼굴도 못 내미는 꼴을 당하기 싫었겠죠.
그래서 자신의 아내 또는 동생 또는 딸 같은 배우들이 감독의 수청을 들어도 가만히 보고만 있었으니..... 이것을 침묵의 카르텔이라고 해야겠죠.
이 침묵의 카르텔을 심리학에서는 '권위에의 복종'이라는 말로 설명 가능합니다.
이 차 대전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대인에게 독가스 살포의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았던 사람은 순진했던 초등학교 교사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사람이 완장(?)을 찼습니다. 
그리고 위 사람의 충성스러운 개(犬)가 된 것이죠.
전쟁이 끝나고... 미국에서 실험을 합니다.
아니.. 분명 불법이고 해서는 안될 것을 뻔히 알면서 왜 했을까?
안 하면 또 못하겠다고 했으면 될 것 아닌가?
그래서 개를 대상으로 실험으로 합니다.
쇠창살에 갇힌 개에게 전기를 가하자 난리 법석을 떱니다. 그러나 전기 고문(?)이 지속되자 묵묵히 전기 고문을 받아들이고 맙니다. 
이후 쇠창살의 문의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전기 고문을 가하지만 개는 도망 가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를 두고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했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직 내에서 암묵적으로 받는 압력을 처음에 거부합니다. 최소한 따르려 하지 않죠. 그러나 조직의 압력이 지속되고 자신의 힘 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맙니다. 조직 내에서 살아남으려면 불의를 거부하기보다는 암묵적으로 승인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된다고 믿는 것이죠.
아마도 이윤택과 함께 또는 지휘를 받는 사람들은 이윤택의 부당함을 잘 알고 있었겠죠.
그러나 이를 거부했다가 돌아올 수 있는 손해라면... 차라리 모른척하자.
아니 차라리 협조(세상 다 그래. 너만 참으면 되라고 했겠죠) 하자.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자위했을 것입니다. '
박정희에게 여자 상납했던 김재규도 있지 않았는가? '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암묵의 승인,
박근혜가 문고리 3인방과 어떻게 정사를 논하고 최순실과 어떻게 정국을 운영했는지 우병우가 몰랐다고요?
아니 모른척하고 싶었겠죠.
' 나만 그렇겠어 국정원장도 돈 갖다 주고.... 그래도 내가 젤 낫다'라고 자위했겠죠.
낫긴 뭘 나아 18놈아!
살인하는 것 보고만 있으면 살인방조,
자살하는 것 안 말리면 자살방조,
도둑질하는 것 보고도 의도적으로 모른척했으면 절도,
'알겠냐
 이 나쁜 새키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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