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요즘 청년들의 취업이 전쟁을 방불케한다.
내가 젊어서 급여가 적긴 해도 취업의 어려움은 그리 크지 않았고 내가 서른이 넘어 순경이 되었을 때만 해도 " 그 봉급으로 먹고살아요? "라는 무시 섞인 질문을 공사판 노무자에게서도 들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공무원은 배고픈 직업 중 하나였으니까~.
오죽하면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한 내 동생도 공무원보다는 건설 현장을 택했을까?

그러나 늘 그렇게 안타깝게 살리는 법은 없었는지 IMF를 겪으면서 국민의 정부는 공무원의 급여를 상당히 현실화했고 경찰관에 대한 각종 수당이 신설되기도 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돌입하면서 급기야 공무원이 대우받는 직종처럼 보였다.
물론 절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고용의 안정성보다는 생산성 향상에 초점을 맞추면서 기존의 정년보장이라는 의미가 퇴색했고 특히 이명박 정권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은 고용의 안정성이란 말 자체가 사치가 되었으니, 공무원의 고용안정성이 최대 장점으로 꼽히게 된 것 같다.
그래서일까?
아들과 딸 이 모두 경찰관이 되었다
아들 녀석은 순경 시험에 합격한 것이 너무도 자랑스러웠지만 딸은 왠지 안타까운 부분도 있었다
" 내가 너마저 순경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란다. "
그러나 딸아이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씩씩하고 당당히  제복을 입고 자랑스러워한다.
덕분에 아내는 주말만 되면 세탁물과의 전쟁을 한다.
세 명의 경찰관의 제복을 세탁하다 보면 하루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런 아내가 고맙고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아이들이 공부할 때 눈치 안 주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보살폈기 때문에 오늘 "트라이 폴리스" 가족이 만들어진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막내는 아버지와 형제를 따르지 말고 더 멋지고 화려한 일을 하기 바란다.
" 아빠는 만구가 박지성 같은 축구선수였으면 좋겠어 "라고 말한다.
박지성이 누군데?
" 우리나라에서 축구 젤 잘하는 형아야 "라고 짤막히 대답해주고 만다.
그때쯤 난 8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 우리 가족은 몇 명의 경찰관으로 채워졌을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