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버지의 권고로 나의 의사와 다르게 공고 기계과에 입학했다.
1978년.
난 인문계를 가고 싶었고 글쓰는게 좋았는데.
그렇데 인생은 꼬였다.
이왕 공고에 갈바엔 전기나 전자를 하고 싶었지만 그역시 물거품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 말 잘듣는 범생이는 재미없다.
나도 그 중 하나지만,
기계과 공부를 하면서 난 전기와 전자를 취미로 삼았다.
그리고 관련 자격증도 여럿이다.

군대 보병 81mm박격포 부대애서 8년 그리고 퇴직 후
경찰관 시험을 치렀다.
직장 생활중 방통대 국문학과를 4년만에 졸업했다.
졸업 논문도 어렵게 패스했다.
나이가 들었다.
우리나이 61살 환갑.
그렇게,
군생활을 포함 38년을 마치고 경감으로 은퇴했다.

"이제 새로운 일을 해야지!"

단단히 각오 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있는 분야에 지원 했다.
적어도 50곳 이상이다.
딱 세 곳에서 연락이 왔다.
경비업체. 신호수. 팬션.
그나마 팬션은 휴무일 와서 창소 해주면 안되겠냐고 한다.
나이가 많아서 안되겠다면서.....ㅠㅠㅠ

인생 60부터는 뻥이었다. 퇴직 후 배달을 하다.

지난 6.30일은 30 수년간 몸 담았던 공직에서 퇴직하는 날. 정확히. 나는 지금 놀고 있는 중. 그러나 지난 ...

blog.naver.com


나도 자존심이 있지 ..그래서 모두 거절 했다.
대신 건설 현장의 일용직울 선택했다.
숙식제공하고 힘든것도 없어 그닥 나쁘지 않다.
더운것 빼곤.
그런데 사람이 힘들었다.
같은 일용직 사람으로부터 불쾌감과 자존감 상실.
그래서 딱 일주일의 경험으로 끝냈다.
더 이상 그런 일은 안한다.





요즘은 다시 오토바이를 탄다.
난 오토바이가 좋다.
아니 바퀴로 굴러가는 것은 다 좋다.
그 중에서도 오토바이의 상쾌함과 해방감이 좋다.
죽어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오토바이 타고 음식을 전달만 하면 된다.
그러나 고맙단 소리 수없이 듣는다.
음식점 사장님과 주문 하는 손님도 여태 일하면서 하루 종일 고맙단 소리 수십번 둘어 본적 없었다.
어쨌건 하루 8시간 일하면 10만원은 넘는다.
문제는 긴 시간은 하기 싫다는..ㅎㅎ

배민이 콜이 적어도 쿠팡이 단가가 낮아도 결국 최저 임금은 넘는다.
위험 하다고?
위험한게 자존감 상하는것 보다야 낫다.
내가 돈 없어서 먹고살기 궁핍해서 하는것도 아니지 않은가?
최고 좋은점,
"난 자유인"
출근이 없다.
그러니 당연히 퇴근도 없다.
내가 일한만큼 벌어 쓰먄 그만이다.
어부의 생활 같다.
고기가 잡히면 잡고 안잡히면 내일 또 잡히겠지!

다음달 부턴 낮 사간엔 대리를 할 것이다.
주로 원거리 손님만 찾이서 하려고 한다.
그리고 밤엔 배달을 한다.
또 싫으면 안한다.

이런 자유스런 삶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더 이상 이력서 넣지 않울것이다.
지금이 좋으니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