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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나도 국민학교 때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러나 좋다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특히 50여 년 전 지금에 비하면 '호랑이 담배 피 던 시절'에 이런 말이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에겐 '외계어' 정도로 치부될 말이지만 나어려서만 해도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란 말은 현실 이어서 당시의 초등학교에서는 남녀 짝꿍을 지어 주지 않았다. 나아가 
중학교 이상은 남학교 여학교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나마 남아 선호 사상으로 남자아이의 숫자가 많았지만 남녀 다른 반을 구성하거나 남녀 합반의 경우라도 줄이 다르게 앉힐 만큼 당시의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남녀의 구분을 엄격했다.


더군다나 도회지로 전학 오니 아예 남자 반 여자만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학년 별로 총 8 학급이었는데 그중 나는 5반으로 남자 반의 끄트머리로 우리 옆반인 6반부터는 8반까지는 여자만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역할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고 그 역할을 따라야만 했었으나 이성에 대한 본능적인 감정마저 구분할 수는 없다. 좋아하는 여자아이에 대해 좋다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역으로 그 여자아이에게 관심을 받으려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자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에서 겐세이( 모 국회의원 번젼임) 놓는다거나 놀려주는 것도 좋아한다는 표현 중의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런 남자아이들을 좋아하는 여자아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표현에 서투른 남자와 그 서투른 표현의 속 마음을 모르는 여자와의 간격 차이는 세상이 구분하려 했 던 '男女七歲不同席' 만 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세상은 많이 변했다.
어린이라고 치부하는 아이들도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감정이 있으며 이 감정도 잘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니 이 감정이 물 흐르듯 저절로 흘러나오도록 해주어 더 큰 강물로 되도록 이어지도록 해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얼마 전 9살만 늦둥이가 이렇게 말했다.
"저도 여자친구 있어요."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여자친구라는 개념이 성인(또는 성인이라 자부하는 청소년)이 생각하는 개념과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근본적인 이성에 대한 호감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9살 아이의 학부모는 세상의 물정을 너무도 모른다. 그래서 인터넷을 자주 보고 또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 보기도 한다.
며칠 전 아이와 영화(런닝맨)을 관람하러 갔을 때 덩치가 큰 여자아이 셋과 비슷하거나 조금 작은 남자아이 셋이 팝콘 그릇을 들고 나란히 극장에 입장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멀지 않은 미래에 해야 할 것을 깨닫게 한다.
아이들에게 "몇 학년이에요?"라고 물으니 4학년이라고 대답한다. "그럼 다 같이 친구예요?"라고 묻자..."얘네 둘이 사귀고요... 우리는 친구고요"
이 아이들도 알고 있다.
사귄다는 말과 친구라는 말의 의미가 서로 같지 않다는 것을......!
나와의 대화는 이것으로 끝났지만 막내는 형과 누나들과 대화를 계속 이어 간다. 아무래도 같은 초등학생이니 통하는 게 있을 것 아닌가? 또 막내가 키가 크다 보니 4학년 아이들은 "아마도 3학년쯤 되겠지?"라고 여겼던 것 같다. 아이들이 한 살은 봐 주는데 2살 차이 나면 따로가 된다.
그래서 4학년이 2학년과 같이 노는 일은 거의 없다 동생이라면 몰라도.. 그러나 한 살 아래인 아이와는 친구를 한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자 말씀으로 왈가왈부할 의사는 추호도 없으니 본론으로 간다.
극장에 입장한 아이들은 영화가 시작되자 4학년과 2학년의 차이가 없다. 그저 어린이로 돌아가서 영화의 한 장면 장면에 열광하고 환호한다.
"음~ 이래서 애들이군!"
며 칠전 한 아이의 질문을 받았다.
초등학교 4학년의 여자아이로 연애 상담이었다.
다음은 그 일부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아이(짝꿍)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며 기분이 좋은데 정작 남자아이는 자신에게 관심도 주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같이 PC방에서 찍은 사진을 카톡 프로필 사진에도 올리는 남자아이에 대하여 다른 친구들이 축하한다는 말까지 한다는데 정작 남자아이는 자신에게 좋아한다는 말이 없으니 나만 좋아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것이다.
그렇다.
아이는 스스로 '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아이는 어른에게 자신이 아직 어린아이라는 것을 말하면서도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 한일이지만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 같은 표현에 적잖이 놀라거나 불안해할지도 모른다.
'저 쪼그만 것들이.... 커서 뭐가 되려고?'라고 생각(말)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에게도 '사랑'은 있다.
그 사랑이 어른들의 생각과 같을 수도 또는 전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도 이성에게 관심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질문 한 아이의 말대로 하자면 현재 남자는 여자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있거나 관심 없는 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싫어서는 아닐 것이다. 좋아하지만 
표현에 서툴거나 아직 좋다는 감정에 대한 확신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난 이 어린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나이의 남자아이들은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아요.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직설적으로 좋다는 표현을 못 하고 다른 방법(행동)으로 관심 있다고 말(행동) 하는 거예요.
그러니 먼저 '네가 좋아!'라고 말해보세요.

그리고 이 틀 뒤 아이는 이렇게 추가 질문을 했다.
"차였어요. 저 말고 다른 반 여자아이가 좋다고 해요."
"어케 해요?!"

이제 난 이렇게 답할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아마도 본인도 마음이 변하여 다른 남자아이가 더 멋져 보이고 또 맘에 들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조급히 생각 갖지 말고 천천히 생각하세요. 그리고 정말 그 짝꿍이 좋다면 기다려 보세요. 아마도 짝꿍도 곧 마음이 바뀔 거예요. 
원래 사람의 마음은 수시로 변하는데 특히 어린이의 마음은 더 빨리 변합니다."

끝으로 내 생각,
아이들은 바뀝니다. 그래서 뭘 할지 또 미래의 꿈도 수리로 바뀝니다. 그러니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기준도 매우 가변적이어서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러므로 아이들의 말(행동) 하나를 두고 너무 깊게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가 자라서 뭐가 될지 또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도 없지만 알면 뭐 하겠습니까?
그냥 지켜봐 주는 것이 부모(어른)의 몫입니다.
누구나 복권은 당첨되기 전까지 쥐고 있을 때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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