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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에 대한 어원을 검색해 보았지만  정확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난 어려서 이 꽃을 개꽃이라 불렀다는 것만 기억합니다.
진(眞) 달래라고 해서 참꽃으로 부르지만 철쭉은 개꽃이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진달래꽃을 식용으로 섭취했던 기억은 있지만 요즘은 일종의 Decoration으로 떡이나 음식에 활용하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60~70년대는 먹고살기 어려운 때였고 꽃잎도 귀한 먹거리였음이 분명합니다. 
겨울을 지낸 지금 시기를 '보릿고개'라고 불렀습니다.
철쭉에 대한 어원을 알고 싶어서 사전을 찾아보니...양(羊)과 관련이 있네요.
'어린 양이 이 꽃을 보고 발을 떼지 못한다'
라는 의미의 
足鄭 足蜀에서 유래 되었다는 중국의 고사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도 두 가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먼저 꽃이 활짝 피기전 봉오리가 어미 양의 젖꼭지와 같아서 엄마양의 생각에 발을 떼지 못한다' 와 '이 꽃잎을 따먹은 양이 독성 때문에 발이 후들거려 발을 떼지 못한다'라는 것인데.... 전 후자의 꽃잎의 독성에 한 표 두겠습니다.
예전부터 개꽃잎에 독성이 있으니 잎에 가져가지 말라는 할머니 말씀이 기억 나거든요,
한마디로 참꽃(진달래)는 먹기라도 하지만 개꽃은 이쁘기만 했지 아무짝에도 써먹을 것이 없는 개똥과 같다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에도 이 철쭉이 등장합니다.
신라 성덕왕 때, 금수마저 아름다움에 반했다는 '수로부인'이 있었습니다.
수로부인은 남편(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게 되자 남편을 따라 소를 타고 강릉으로 가던 중 절벽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을 발견합니다.
' 저 꽃을 누가 가져다줄 건가?'
절벽이 높고 무서워 아무도 못하도 주저주저 머뭇거릴 때 한 노인이 언덕을 기어올라 꽃을 꺾어 옵니다.
신라 향가에 실려있는  내용입니다.
[원문]
紫布岩乎邊希
執音乎手母牛放敎遣
吾肸不喩慚肸伊賜等
花肸折叱可獻乎理音如
[김완진 해독]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이렇듯 사랑은 누군가에게 아무 대가 없이 꽃을 바친 노인의 마음처럼 단지 꺾어 주기만 해도 행복한가 봅니다.
그래서 철쭉의 꽃 말은 '사랑의 즐거움' 라고 합
니다.

 

 

 

고대 가사는 해독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당시 우리말을 정확히 적을 수 있는 문자가 없었고 한자를 사용했으나 한문이 아닌 향찰(鄕札) 방식으로 기록 했기 때문입니다.
향찰은 한자의 훈독과 음독을 모두 사용하였기에 현대인에겐 외계 언어가 되고 말죠.
향찰에 대한 뚜렷한 기록이 없어 이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었는데 향찰의 기록 방식을 연구한 일본인, 가나자와 쇼 주부로(金沢庄三郞, 1872-1967) 였고 이 사람의 연구 논문을 본 양주동 김완진 등이 향찰에 대한 연구로 향가를 현대적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철쭉은 조경수 정원수로 인기 있는 수목입니다.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추위에 강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와 유사하지만 훨씬 화사한 '영산홍'도 있습니다.
영산홍은 연산군이 사랑한 꽃이라고도 하죠?

따뜻한 봄!
가족과 함께 손잡고 나들이는 어떠세요?
철쭉꽃향기로 사랑을 채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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