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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숲에 들어서면나의 머리털 하나에도 감각 세포는 활성화되며 나의 신체는 육감이 살아 숨 쉬게 된다. 그래서 바람소리 풀잎의 냄새 새소리 하나에도 초 자연의 영적 감각이 살아난듯한다."

정년을 3년가량 앞두고 고민이 깊어진다.
지금까지 난 무얼 해 왔을까?
토끼 같은 아내와 결혼하고 고물고물 강아지 같은 자식들을 낳아 부양하고 공부 시켜 각자 자신들의 안정된 직장을 갖게 서포터 했으며 고가의 주택은 못 되어도 전세금 걱정 없이 등 붙이고 살 수 있는 집도 마련했으니 잘 먹고 잘 살지는 못해도 남부러워 하지 않고 살아온 아주 평범한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의 중년 남자의 길을 걸어온 것 같다.

이제부터 뭘 해야 할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아 보이진 않는다.
곧 60살이 될 거고 아이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할아버지가 되겠지!
원치 않아도 나이는 쌓이고 주렁주렁 인생의 희로애락은 포도알처럼 열리겠지? 그러나 다 먹지도 못할 과실을 맺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부족함은 내 탓이고 남은 과실은 남은이에게 주어지겠지......?

지난 금요일,
전일 당직으로 일찍 퇴근하는 날이다.
27년째 해온 일이지만 경찰관에게 당직이란 하나의 숙명처럼 따라다닌다. 외근 경찰관에게 주. 야 교대 근무는 근무조건이고 내근직에게 일정 기간마다 찾아오는 당직은 과제물과 같다.
물론 90년대까지만 해도 24시간 맞교대하던 시절에 비하여 3교대니 4교대를 하고 있는 아들딸을 보면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그만큼 세상이 개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이전부터 목적 없이 무작정 떠나는 나만의 여행을 즐긴다.  그 여행이란 게 먼 거리를 오랜 시간 동안 이동하거나 비행기를 타고 가서 해외의 문물을 즐기지 못하더라도 온전히 나에게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리고 어젯밤처럼  당직으로 밤을 새운 뒤에는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나에게 할애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물론 당직을 한두 번 해 온 일이 아니지만 여전히 부담스럽긴 마찬가지고 나이가 들수록 무서워진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깊은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신경을 곤두서고 있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심신의 피로는 극에 달한다. 그래서 이같이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맑은 가을 공기에게 맘껏 노출하고  싶어진다.

가을 공기는 다소 쌀쌀하다. 특히 달리는 자동차의 창문 틈으로 파고드는 맑은 공기는 여름에 비해 다소 무게가 더해져 얼굴에 와닿지만 심신의 찌꺼기까지 밀어낼 듯 상쾌하게 코에 와닿는다.
하늘은 높고 푸르다.
동두천 탑동마을을 지나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갔다. 그러고 보면 지금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좋은(고급)은 아니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라면 이런 언덕길마저 가뿐히 올라가는 여유로움이 있어 좋다. 내 연봉이나 나이에 맞지 않다고 여기는 분들도 가끔 있지만 나의 차(트랙스 1.6 디젤)은 힘 좋고 튼튼하고 핸들의 조향성까지 완벽하여 부족함이 없다.

600고지쯤의 정상에 차를 세우고 임도(林道)를 걸었다. 예전에 군대 생활할 때만 해도 이 임도는 없었다. 그저 비탈길을 따라 능산을 넘고 또 넘어 저 멀리 연천 다락대 사격장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산을 관리하고 화재 예방 및 진압에 사용할 이 같은 길을 조성한 것은 보면 확실히 행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찬란 찬란한 가을 하늘이 나의 가슴으로 들어오고 맑은 공기는 폐세포를 따라 도는 느낌이다. 임도를 따라 1km쯤 걷다 보니 등에는 땀이 배어 나오고 머릿속에도 작은 땀방울이 맺힌다. 이 땀방울마다 이 맑은 공기 속에 포함된 산소와 교환된 나의 체내 찌꺼기가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내 몸의 찌꺼기가 모두 배출된 것 같지 않다. 남은 찌꺼기까지 깨끗이 배출하기 위해 방광에 고인 소변까지 흘려보내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20분가량을 걸어왔지만 아무도 없다.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달리는 길이지만 평일이다 보니 내 앞으로도 또 뒤따르는 사람마저 없다. 좌우를 살핀 후 방광의 소변 한 방울까지 쏟아 내고야 느껴진다. 
햐~아 왜 이리 개운할까? 
이제 나의 체내의 모든 쌓여있고 고여 있던 모든 썩은 것을 애지 둥지 붙잡고 있던 내 몸은 이 빠져나간 순간 허전함과 아쉬움에 내 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떨려오는 오한이 온몸을 엄습한다.

인간의 본래 모습이 이런 것 아니었을까?
잘 먹고 잘 싸고 ..... 내가 필요로 한 것을 자연에서 얻고 그 찌꺼기를 자연에 배출하여 순환 시키는 역할이 인간 아니었던가?
눈을 뜰 수조차 없는 따스한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수채화 물감처럼 짙은 푸른 하늘이 내게 내려와 있고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 가지들의 노래를 들으며 한숨 자고 싶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돗자리를 준비하고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 올걸....!  그러나 아무려면 어떠랴? 있는 그대로라도 잠깐 쉬고 싶어져 배수구를 만들기 위해 쌓은 축대에 걸쳐 앉았다. 
생명을 다하고 떨어진 낙엽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색상을 자랑하며 땅으로 돌아간다. 사람은 죽어 갈 때 추한데 자연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생명을 마감한다. 그 생명을 다한 떡갈나무 잎과 상수리 나뭇잎이 수북하다. 그러나 단 하나의 도토라를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의 물욕이 이 깊은 산중까지 뻗쳐왔다는 뜻이다.  결국 인간은 자연을 섭취하지만 자연에 돌려주지 못한다. 식품을 섭취한 뒤 환경오염물질로 배출시키고 마는 것이다.

발아래 멀리 공원묘지가 보인다.
수많은 사연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묻힌다.
나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고 했던가?
저 묘지에는 반 년의 간격으로 돌아가신 장인 장모님의 묘지도 있다.  
그러나 저기를 내가 가 보았기에 묘지일 뿐 멀리서 이렇게 바라보면 그저 산을 깎아 계단으로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해 보인다.

장모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병치레를 많이 하셨는데 결국엔 치매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장인과 한 살 차이 나는 두 분을 볼 때마다. 장모님이 먼저 돌아가실 것 같다고 여겼지만 장인어른이 반년을 앞서 여기에 묻히셨고 장모님은 한집에 머물려 수발하는 딸마저 알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후남편의 옆에 묻히셨다. 그러나 저 수많은 묘지에 사연 없이 죽은 이가 있을까? 누구라도 소중한 기억과 추억 그리고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기억해주는 것은 남은이의 몫이 되고......!

이런저런 생각에 산길은 꽤 깊이 들어왔다. 아마도 곁에 동무가 있었다면 깊이 들어왔다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맹수가 날 헤치거나 귀신이 나타날 가능성도 전혀 없는 훤한 대낮이지만 산중이라서 그랬을까 뭔지 모를 두려움이 나를 흔든다. 옛날 어른들은 이 같은 일에도 꼭 사연을 첨부했다.  무서움을 느끼는 것은 낮에도 귀신이 나온다거나 그곳에 귀신이 머물고 있어서라고도 했다. 그러나 난 종교가 없는 만큼 사후 세계도 없는 사람인지라 종교도 믿지 않는다.
"종교는 무슨 개뿔!"
이런 나룰 두고 개종한 어머니는 오랫동안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라도 결국엔 하나님을 찾게 된다 그럴 바엔 일찌감치 교회에 다녀라!"
그러나 난 '그럴 리 없다'라며 한마디로 잘랐고 내 의지로 종교 앞에 머리 숙여 본 적이 없다. 나는 늘 '인간은 살아서 행복하기 위해서 존재하며 사후 세계는 관심 없다'라고 말한다. 이제 그런 아들을 두고 어머니도 날 포기했는지 서로의 종교에 대하여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난 그래서 친구도 모두 종교가 없는 사람만 사귄다. 
종교 있는 사람은 그만큼 거릴 두는 게 좋았다.
왜?
어머니처럼 반드시 교회에 가게 될 거라면 단언하면서 그럴 바엔 서둘러 교회 가잔 말을  하지 못할 만큼 거리를 두어야 한다.
어쩌면 어머니와 알 수 없는 거리가 느껴지는 것도 종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남은 3년 반가량의 공무원 생활 그리고 정년퇴직 후 뭘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자 찾은 산길이었지만 엉뚱하게도 나의 내면을 비우고 자연으로 채우는 과정이 되고 말았다.
아무도 없어서 좋았다.
부스럭 소리를 내며 바람에 흩어지는 갈잎의 소리마저 느낄 수 있는 고요함 때문인지 아니면 자연의 힘인지 내 신체의 육감이 섬세히 살아나 주변의 모든 것과 교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 당직 다음 날엔 두툼한 옷을 입고 돗자리와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 와야겠다.
어쩌면 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는 남편 다람쥐의 고단한 모습을 보며 동병상련의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카메라를 충전해 두었다. 

2018년 11월 2일 왕방산의 산길의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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